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리랑카 내전 (문단 편집) == 배경 == [[파일:external/bbb56bc8f8b938ce39cd109b04c0168a4ec8068370e3c9e4f59f1990c110a394.png]] ▲ 스리랑카 지도 [[인도양]] 남단에 위치한 [[실론 섬]]은 약 2천 년 전부터 실론 섬 북동부 지방과 [[인도]] 남부 지역에서 살았던 타밀족과 기원전 540년경 인도 북부에서 건너온 [[아리안]]족 계통 민족과 스리랑카 원주민인 베다인의 혼혈인 싱할라족들이 살고 있었다. 실론 섬의 타밀족들은 인도의 [[힌두교]]를 믿으며 [[불교]]를 신봉하는 싱할라족들에게 저항하기도 했었으나 이들은 불안정하지만 평화를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실론 섬은 1815년 [[대영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는데 싱할라족은 영국에 격렬하게 저항했고 싱할라족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한 영국은 그 대신 타밀족의 지지를 끌어냈다. 이후 영국은 싱할라족과 타밀족끼리 [[디바이드 앤 룰|대립과 분열을 부채질하여 실론 섬을 지배]]하였다. 거기다가 영국은 인도 남부 지역에서 살고 있던 타밀족들을 차밭에 쓸 노동 인력으로 끌어와 이주시켜 싱할라족의 분노를 더욱 부풀리기까지 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강대국들이 소유하고 있던 [[해외 영토]]와 [[식민지]]에서 탈식민주의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실론 섬 역시 1948년 '실론'이라는 국호로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그러나 독립 과정에서 실론의 모든 주요 권력들은 다수 싱할라족들이 장악하였고 이들은 소수 타밀족들에 대한 차별 정책을 펼쳤다. 실론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다시피한 싱할라족들은 근현대 시대에 이주해온 타밀족들에게 시민권을 의도적으로 부여하지 않으면서 선거에서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을 줄였고, 실론 국내의 타밀족들에게 [[타밀어]] 사용을 금지하고 [[싱할라어]] 사용을 강요하는 한편, [[군대]]와 [[경찰]], 장관 역시 타밀족들이 차지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였다. 거기다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요르단 강 서안 지구과 [[가자 지구]]에 [[유대인]]들을 이주시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살던 마을을 파괴하고 유대인 정착촌을 세우듯이 타밀족들이 거주하는 실론 섬 북부, 동부 지역에 싱할라족들을 대거 이주시켜 타밀족 마을을 부수고 싱할라족 정착촌을 세웠다. 스리랑카 정부가 내전 발발 전에 타밀족 지역 내에 세운 싱할라족 정착촌들은 내전이 발발하자마자 싱할라족 주민 구성원들 대부분이 분노한 타밀족들의 보복에 마을이 파괴당하고 대거 추방, 학살당하면서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심지어 교육 정책에서도 인구 비례를 적용해 타밀족들을 억눌렀다. 이러한 싱할라족의 타밀족 억압과 차별에 타밀족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결국 정부의 타밀 정책에 맞서고자 정당과 단체 등을 만들어 시민권 확대와 자치권 확대, 타밀족 차별 정책 폐지 등을 요구하였고 타밀족 출신 [[국회의원]] 입후보자를 주요 총선과 지방 선거 등에 내보냈다. 1960년대에는 몇차례에 걸쳐 어느 한 정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기에 몇차례 [[캐스팅보트]]를 행사하기도 했지만 [[통일국민당(스리랑카)|통일국민당]]과 [[스리랑카 자유당]]을 비롯한 양당은 싱할라 민족주의와 타밀족과의 연합정부 설립사이에서 간을 보던 상황이었고, 결국 근본적인 상황은 크게 변화한게 없었기 때문에 타밀족들을 더욱 분노하게 했다. 1972년 국호도 실론에서 싱할라어인 스리랑카(Sri Lanka)로 변경되고 스리랑카 정부의 싱할라족 중심의 정책이 더욱 더 강화되어 타밀족 억압이 더 강력해지자, 점차 스리랑카 타밀족 사회에서도 폭력적인 무력 투쟁으로 스리랑카로부터 분리 독립하여 타밀족 독립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강경 세력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스리랑카 타밀족 사회는 평화적으로 정부와 타협하여 자치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온건 세력과, 무력으로 스리랑카로부터 분리 독립하여 스리랑카 북동부 지역에 타밀족만의 타밀 민족 국가 수립을 주창하는 강경 세력으로 분열되기 시작했고, 1977년 총선에서 자유당이 참패하고 통일국민당이 재집권하는 과정에서 타밀족의 독립을 주창하던 타밀연합해방전선이 자유당을 제치고 제1야당이 되었다. 그렇게 되자 싱할라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며 타밀족들을 죽이거나 북동부지역으로 추방시켰는데 이는 타밀족들의 원한을 더욱 강화시켰다. [[파일:external/www.topnews.in/Tamil-chief22.jpg]] 프라바카란 사진. 뒤의 깃발은 타밀 엘람 깃발. 그리고 1976년 무력을 통한 타밀족 독립 국가 건설을 주창하는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Velupillai Prabhakaran) 등 일단의 급진적 타밀족 강경 인사들이 '''타밀 엘람 해방 호랑이'''('''LTTE''', '''L'''iberation '''T'''igers of '''T'''amil '''E'''elam)이라는 이름의 반정부 [[게릴라]] 저항 단체를 결성했다. 결성과 함께 LTTE는 인도 타밀족들의 자금 지원, [[소련]]과 [[동유럽]] 국가 등의 무기 및 군사 고문단 등의 지원을 받으며 게릴라전과 폭탄 테러 등으로 스리랑카 정부 청사와 경찰서 등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LTTE의 세력은 온건파 타밀 세력들에 비해 상당히 그 힘이 미미하였다. 애초에 시작이 [[민병대]] 비슷한 것이었으니 국가의 정규군과 비등한 화력이나 인력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